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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리뷰

암의 치료에 대한 전기를 담은 책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이 책은 말하자면 암의 치료법이나 예방법이 상세하게 적힌 책이 아니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이 책은 암의 '역사' 책이다. 암이 우리 인류와 어떻게 함께 해왔고 어떠한 추론을 하였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서술되어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이 책 역시 방 한편에 다소 오랫동안 박혀있던 책이다. 첫 단락을 읽고 '의학'이 아닌 '역사' 서적임을 직감했기에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다. 또한 다른 역사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주인공이 고정되지 않는다. 인물 중심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결국 이 책의 주인공은 '암'이다.

 

암 치료 방법의 간단한 역사적 흐름

  악성 종양이 커져서 죽음에 이르는 일이 발생한다 -> 악성 종양을 외과적으로 제거한다 -> 그럼에도 죽는 일이 발생한다 -> 그 주변 조직까지 외과적으로 제거한다 -> 그럼에도 낫지 않는다 -> 더 광범위하게 제거한다 -> 그럼에도 낫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이고 간단한 논리의 치료이다. 바로 그 부위를 표적으로 절제하는 '근치 수술'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이 근치 수술이 대표적인 암 치료 방법이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질환들을 치료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차도가 없자 나온 방법이 '화학 요법'이다. 이전에 LD 50 관련한 포스트에서도 말했듯이 약과 독은 한 끝 차이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암 치료였던 것이다. 화학 요법은 생각보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약이 되기도 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독이 되기도 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중간 지역에 머무른 환자였다. 약일 가능성과 독일 가능성이 있는 구역.

  사람은 정말 다양하다. 요즘 MBTI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분류'하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면 T와 F과 50:50으로 나오는 사람은 어떤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구분짓기 힘들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초기의 감기에 독한 약들을 먹지 않을 것이고 말기의 병에 감기약 수준의 약을 먹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약도 100% 낫는다고 할 수 있는 약이 없다. 예외가 되는 개체가 존재하기 때문.

  어쨌든 화학 요법이 정량화되지 않았던 이 구역 사람들은 정말 많은 희생이 있었고 암 치료제는 1900년 말 까지도 성과가 크지 않았다. 재발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암이 모든 정상 세포에 존재하는 내생 전구 유전자의 활성화로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암의 발병 기전에 대한 청사진을 얻기 전과 후의 치료 방식은 다르다. 어떤 병의 발병 기전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과 아닌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 알기까지 현대 의학은 거의 15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현재는 몇 종류의 암은 극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책에 직접 서술 되어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질병이 정복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키워드는 '가설'과 '검증'

  암의 치료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과 좌절의 역사를 지켜보며 반복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가설 수립'과 '검증'이다. 나온 정보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가설이 폐기되고 바이어스가 개입된 검증으로 수 년을 날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류는 진보하고 있고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고 있다.

  어떤 커뮤니티에 올라온 '인간이 복어를 먹게 된 과정'이 있다. 과학이 없었던 시절 복어에 독이 없는 부위와 조리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지금 복어를 먹을 수 있다. 수많은 가설과 검증되는 단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헛수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느낀 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현대 의학의 큰 장점은 '과학적 방법'이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사람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포인트가 좀 다르겠지만 나는 Randomised Controlled Trial(RCT; 무작위 대조군 연구)이 굉장히 중요한 과학적 검증 방식이라 생각한다. 예방 의학 서적에서도 신뢰도가 굉장히 높은 방식인 Trial이라고 언급된다. 하지만 이 방식이 도입된지 100년이 겨우 넘었다. '완벽'이란 없구나.. 다시 깨닫는다.

  또한 내가 옳더라도 나를 지지 해주는 세력이 적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인간사 머리가 더 큰 쪽의 힘이 강하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인류적 관점에서 큰 일을 진행 시킬 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결국 사람은 '머릿수'다.

  이 책 아주 추천한다. 내용 자체가 어려운 점은 없지만 다소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지루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암에 대한 기원을 보는 의학과 역사가 합쳐진 서적으로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자부한다.